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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녹지 조성에 관한 특례



테이블에 마주 앉은 건축가와 클라이언트는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설계를 시작한다. 건축가는 건물에 자신의 창작 의지를 투영하고 클라이언트는 건물에 자신의 미래를 투영한다. 건축가는 자신의 요구를 거듭해 주장하는 동시에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을 능숙하게 건물에 녹여내는 역할을 맡는다.

테이블 위에서 건축가와 클라이언트 간에 요구사항이 오가는 동안, 테이블 바깥에선 또 다른 요구사항이 겹쳐서 나타난다. 하나의 건물은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며 만들어진다. 부동산 수익을 고려해 건물의 면적이 변화하기도 하고, 주변의 민원 또는 현장 상황의 변화로 건물의 외관이 변경되기도 한다. 환경, 자본, 현장 상황 등과 같은 테이블 바깥의 요구사항들은 대체로 건축행위의 제약조건으로 작용한다. 그것은 때로 제약조건을 넘어 적극적으로 건물의 디자인에 관여하기도 한다.

여러가지 종류의 제약조건 중 법은 가장 직접적인 방법으로 건물을 디자인한다. 건축법을 비롯한 건축 관련 법규들은 건물의 위치와 규모 등을 제한한다. 건물을 지을 수 있는 영역을 지정하고 건축물의 높이와 면적 등에 제한을 두어 건물의 크기를 디자인한다. 건축물의 용도를 제한하고, 건물 안에서 사람이 지나는 통로의 최소폭과 계단의 높이와 형태 등을 제한한다. 좀더 세부적인 법 조항을 들여다보자면 손잡이의 형태와 계단의 단 높이 등을 디자인하기도 한다. 물론 법규가 직접적인 형태를 제안하지는 않지만 디자인의 가이드가 되는 제약을 두는 것이다.

건축물의 설계에 영향을 끼치는 관련 법규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소방법>, <녹색건축물 조성 지원법>, <주차장법> 등의 법률이 건물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디자인한다.

밀도가 높은 건축물의 경우 주자장의 배치가 건물 전체의 뼈대를 결정짓는 주요한 결정이 되기도 한다. 소방법에서는 유사시 소방관이 드나들 수 있는 개구부의 크기와 위치를 지정한다. 이것은 꽤나 직접적인 디자인 개입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법은 건물의 조형에까지 관여하기도 한다. 사선 높이 제한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건축물의 도로 사선 높이 제한>은 건물 각 부분의 꼭대기 지점에서 도로 반대쪽 경계선까지 사선을 그어 도로폭의 1.5배 이하로만 건축하도록 높이를 제한하는 규정이다.

근대 이후 도로에 면해 지어진 많은 건물들이 이 법 조항에 의해 계단식 모양, 사선 모양으로 디자인되었다. 사선 모양의 건물은 건물의 형태를 넘어 도시의 풍경이 되어버렸고, 획일화된 도시를 만드는 주범으로 지적되었다. 획일화된 도시의 풍경으로부터 탈피하고자 이 조항은 2015년 폐지되었다.

국토교통부의 보도자료를 살펴보면 도로 사선 높이 제한 조항의 폐지에는 도시미관 향상뿐 아니라 부동산 시장 활성화의 목적도 함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법규뿐만 아니라 부동산 시장의 수요가 건물의 디자인에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도로 사선 높이 제한 이외에도 <가로 구역별 높이 제한>, <정북 일조 사선 높이 제한> 등 건물의 높이 등을 제한하여 건물의 외형을 디자인하는 법조항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법은 사회의 변화를 반영한다. 도로사선제한은 1962년 가로의 시각적 개방감과 통풍을 고려하고 일조권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도로사선제한을 통해서 우리는 고밀화, 고층화의 기미를 보이던 당시 도시 상황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현재에도 도시의 변화는 진행형이며 이에 따른 법의 디자인은 여전히 유효하다. 도시의 확장과 이에 따른 자가용 인구의 급증으로 현대의 건축물은 많은 주차면적을 확보하도록 요구되었다. 1층에 주차장을 배치하고 건물을 위로 들어 올린 필로티 건물이 현대 공동주거의 대표적인 형태가 된 이유다.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에 대한 우려가 건축물의 단열기준에 반영되고 있다. <녹색건축물 조성 지원법>에 따라 건축물이 충족해야 하는 단열기준이 규정되어 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단열기준을 까다로워지는 추세다. 대체로 근래에 지어진 건물일수록 외벽의 두께가 두꺼운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개인녹지조성에 관한 특별법>은 2028년 입법예고 되어, 2029년에 시행되었다. 이전에도 개인녹지의 필요성에 대해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대중에게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개인녹지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주로 도시의 자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탄소 절감 효과와 도시 공동화 현상의 해결 등은 그들이 기대하는 도시 자생의 결과였다. 하지만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짊어지고 사는 개인에게 지구와 도시환경을 위한 배려는 사치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것이 대중의 공감, 혹은 그것을 넘어 제도적 실현으로까지 이어지기엔 절박함이 부족한 시기였다.

간혹 전시 등을 통해 실험적인 아이디어가 소개되곤 했지만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시키기 위해선 더 구체적인 동기가 필요했다. 공동체적 위기의식 혹은 개인의 욕망 등과 같은 원초적 원동력이 배제된 계획은 아이디어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공공의 주도로 녹지조성계획이 다양하게 시도되기도 했다. 주로 텃밭과 옥상 등 건물의 짜투리 공간을 활용하여 녹지를 조성하려는 의미 있는 시도였다. 하지만 역시 대단위 도시 계획으로까지 확장되지는 못했다.

개인녹지 조성에 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개발업자들의 추진력 덕분이었다. 건물의 면적은 부동산 수익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요소로서 개발업자들이 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 가장 큰 관심을 두는 부분이기도 하다. 빈 땅에 새로운 건물을 짓거나,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더 큰 면적의 건물을 짓는 등, 도시의 개발은 건물의 탄생 혹은 기존 면적의 증가를 전제로 이루어져왔다.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도시에서 건물을 새로 지을만한 땅은 찾기 힘들어져만 갔다. 개발업자들은 새로운 개발모델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건물을 더 높이 올리고, 더 넓게 확장시키는 증축방식을 통해 그들은 건물의 면적을 생산해 나가기 시작했다.

건물을 높게 올려서 더 많은 면적을 얻기는 쉽지 않다. 건물의 구조를 새로이 계산하고 더 높아진 무게만큼의 구조를 각 층에 추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든다. 이미 지어진 건축물 위로 몇 개의 층을 더 짓기 위해선 건축물 각 층에 두꺼운 기둥을 여러 개 덧대야 하며 필요에 따라 두꺼운 보를 덧대야 한다. 기둥과 보의 신설로 각층의 건물은 더 좁아지며 더 낮아진다. 건물이 높아지면서 생기는 면적의 이득이 과연 이득이 맞나 싶을 정도의 면적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개발업자들은 높은 하늘을 놔두고 차라리 옆으로 증식하는 방식을 더 선호하기 시작했다.

발코니는 건축물의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완충공간을 뜻한다. 안과 밖 사이에 놓인 이 공간은 고층 주거에 살면서 느낄 수 있는 갑갑함을 해소토록 하는 치유의 역할 외에도 화재 등의 재난에 대비해 피난의 역할을 하는 기능적인 역할을 기대하며 고층 주거에 적용되었다.

발코니는 도시와 건물을 연결하며, 건물 안에서도 햇빛과 바람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개인의 영역과 공공의 영역이 만나는 부분으로서 이웃 간의 소통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발코니는 주거환경을 위해 무척 중요한 건축적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에겐 ‘남는 공간’ 정도로만 인식되었다. 초기 아파트에 대한 거주 후 평가에선 장독대 역할을 할 수 없으며 빨래를 널 수 없는 애매한 발코니 면적에 대한 불만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개발업자들에게 이 애매한 면적은 부동산의 면적을 수평적으로 확대시키는 위한 좋은 구실이 되었다.

발코니를 설치하면 일정 면적을 건축면적에서 제외해주는 방식으로 건축법은 발코니 설치를 장려해왔다. 하지만 발코니는 끊임없이 발코니 면적을 내부화하려는 사용자의 요구, 혹은 개발업자들의 요구에 부딪혀 왔고 슬금슬금 그들의 요구를 수용해왔다. 시간에 따라 건축법에서 정의하는 발코니의 변천을 추적해보면 발코니가 시간을 지나며 점차 내부화되어가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발코니는 이미 내부가 되어버렸음에도 그 면적은 여전히 건축면적에서 제외되는 혜택을 누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리적인 건축행위 없이 법규의 변화만으로도 경제적 이득을 얻은 개발의 예이자 법규의 디자인만으로 건축물이 변화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건축물의 면적 확대는 경제적 이익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으므로 마다할 이유가 없다. 요즘 지어지는 고층주거는 그래서 대부분 발코니를 내부화하고 있다. 현재 발코니의 존재는 면적을 확장할 수 있는 잠재적인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주거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발코니 설치를 장려하던 법의 취지가 오히려 주거의 질을 떨어트리는 결정적 지침이 되고 만 것이다.

2003년 이후 재건축 규제가 강화되면서 서울에서는 이전 법규와 현재의 법규 사이의 간극을 사용해 건물을 수평적으로 확장하는 개발 방식이 성행했다.

법의 개정으로 대지에 건축이 가능한 면적은 늘어나기도 줄어들기도 한다. 대지 안에 건축할 수 있는 바닥면적의 비율을 뜻하는 용적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완화되고있는 추세에 있었다. 과거에는 지을 수 없던 부분이었으나 현재는 건축이 가능한 것. 이것이 이전과 현재 법규 사이의 간극이다.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기존 건물에 새로이 건축활동이 가능해진 면적만큼의 건물을 맞붙여 짓는 방식을 선호했다. 수직으로 증축하는 것에 비하면 비교적 쉽고 저렴한 증축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기존 아파트 소유주들은 기꺼이 공사 비용을 지불하고, 공사 기간 동안 자신의 거주지를 옮기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공사가 완료된 후 아파트의 소유주는 지불한 공사비의 몇 배에 이르는 부동산 이익을 얻게 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수평 확장식의 개발 방식(발코니의 실내화, 수평 증축 리모델링)은 개발업자들에게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었다. 그들은 수평적 확장의 기술적 노하우를 이미 가지고 있었으며 발코니와 같은 모호한 공간의 발명은 확장의 가능성을 제공해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2019년 겨울부터 전 지구를 휩쓴 판데믹은 자립 도시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실감하게 해주었다. 집에서 격리 생활을 경험하며, 매일 따로 도시락을 먹으며 비접촉 비대면 생활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많은 사람들이 직감했다. 도시의 자립을 넘어 개개인의 자립이 주요한 화두로 대두되었고, 부동산 시장도 이에 발이 빠르게 대응했다. 화장실을 분리해 설치하고, 현관에 수돗가를 설치하는 등 가정 내 인프라를 분리하는 공사가 유행처럼 번졌다. 기계설비와 인테리어의 변화부터 시작한 변화의 바람은 건축 시장에까지 이어져 건축 관련 종사자들은 코로나와 관련한 다양한 건축적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집 안에 있는 갑갑함을 해소하기 위해, 혹은 텃밭의 용도로 식물을 재배하기 위해 개인 녹지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TV와 SNS에서 텃밭에 대한 아이디어가 줄줄이 소개되었고, 소고기를 먹는 횟수 대신 직접 재배한 식물이 식탁에 오르는 횟수가 삶의 질을 논하는 척도가 되기 시작했다. 많은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내부와 외부 사이의 전이공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1979년 최초의 고층아파트가 지어졌을 때 이미 언급된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이미 확장된 발코니에 한 번 더 개인 녹지가 덧대어지는 수평적 확장 계획은 2023년 판데믹이 끝나갈 무렵부터 논의되기 시작했다. 개인 녹지는 모든 국민이 누려야 하는 기본권이라고 판단하여, 개인녹지조성에 관한 특별법을 2028년 제정하고 입법 예고하기에 이르렀다.


다. 다음의 경우에는 건축면적에 산입하지 않는다.

13) 개인녹지조성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설치기준에 따라 설치된 구조물

<「건축법 시행령」 제119조(면적·높이등의 산정방법) 제1항 제3호 다목 개정(2028.7.27.)>


개인 녹지는 건폐율과 용적률에 상관없이 각 건물에 3미터까지 연장해 구축될 수 있다. 개인녹지 조성을 위한 특례는 개발업자의 기획력과 개인의 욕망이 원초적인 추진력이 되어주었다. 이전에 있어 왔던 수많은 도시농장 계획과는 다르게 큰 호응을 얻었다. 수많은 공동주거에서 건물 외벽에 개인 녹지를 접합하는 방식으로 공사가 진행되었다. 건설업계는 흔치 않은 호황을 겪었고, 도시외벽은 푸른색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개인녹지 조성에 관한 특례>는 환경론자와 부동산 개발업자, 건축가들, 진보 도시계획자들의 바람이 합일을 이룬 이례적인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건축 면적의 혜택을 통한 발코니 설치 장려가 결국은 주거공간에서 발코니를 모두 소거시켜 버렸던 전례에 비추어 볼 때, 환경의 입장에서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을지도 모른다.

2020년대 후반 개인녹지조성법이 시행된 그해에 급격한 기후변화가 진행되었다. 2029년 기록적인 한파로 개인녹지라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로 모든 개인녹지가 사막처럼 변해버렸다. 다음 해 여름에는 많은 세대가 폭우의 피해를 보았다. 개인녹지 조성에 관한 특례법이 시행되자마자 기후변화에 의한 피해가 계속되자 국회에서는 개인 녹지를 유지하는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졌다. 그리고 2031년 <급격한 기후변화에 따른 개인 녹지의 내부화 특례>법안이 발의되었다. 해당 조항은 <개인 녹지의 내부화>를 통해 예측할 수 없는 기후변화로부터 개인 녹지 보호를 장려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푸하하하프렌즈/한승재, 한양규, 윤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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